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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항쟁, 시대정신, 인권, 질문)

by seilife 2025. 12. 25.

영화 <1987>은 단순한 실화 바탕의 정치 드라마를 넘어서,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민의 피와 희생을 통해 쟁취되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하여, 전국적 민주항쟁으로 번지는 역사적 순간을 긴장감 있게 담아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정권의 은폐 시도와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용기 있는 선택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1987이 전하는 민주주의, 시대정신, 인권의 의미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1987 민주주의의 뿌리를 되짚다: 박종철, 그리고 6월 항쟁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이었던 박종철은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합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놓으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몇몇 검사, 기자, 교도관의 집요한 노력과 내부 고발로 인해 고문치사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전국적인 분노를 일으켜 거대한 민주화 시위로 번져갑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인간 군상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엮어내며 전달합니다.

검사 최환(하정우 분)은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며 시신의 화장을 막고 부검을 강행합니다. 그의 결정은 법이 권력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시 현실에서는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기자 윤상삼(이희준 분)은 모든 통제를 뚫고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의 사명을 보여주며, 단지 보도 이상의 사회적 책무를 수행합니다.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은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정보 전달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탄생을 ‘개인의 선택’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그려냅니다.

박종철의 죽음은 단지 한 학생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민주주의란 것이 헌법 조문에 적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의 분노와 집단적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대정신의 주체는 ‘우리’였다

영화 1987은 단지 민주주의를 외치는 운동의 기록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시민들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정신은 특정한 리더나 이념에 의해 이끌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선택, 결단, 각성이 모여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 인상 깊은 인물은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입니다. 처음 그녀는 정치와 거리를 두며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친구의 오빠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희는 자신의 무관심이 누군가의 죽음에 일조했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과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 계기를 통해 연희는 점차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게 되고, 마침내 시위에 참여하면서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선택’이 시대를 바꾼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교도관 한병용 역시 특별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정권의 편에 선 것도, 운동권도 아닌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정의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그가 정보를 유출하며 진실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할 때, 관객은 깨닫습니다. '시대정신'이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조용하지만 용기 있는 선택들이 모여 이뤄지는 것임을 말입니다.

이러한 개인의 선택은 누군가의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더는 무고한 희생을 외면할 수 없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이념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권은 목숨과 맞바꾼 가치였다

<1987>은 인권에 대해 단지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삶의 조건’으로서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물 한 컵’이 아니라, 권력의 횡포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을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영화는 고문 장면을 과도하게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당시의 공포와 인간의 절망감을 매우 리얼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수감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 형사, 사람을 개처럼 다루는 취조 방식, 이를 은폐하려는 권력의 시도 등은 모두 인권이란 가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관객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듭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한열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직격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집니다. 그의 피가 흥건히 흐르는 장면은 단지 슬픔을 넘어서 분노와 절망을 함께 전달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죽음을 비극으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이한열의 죽음은 오히려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나서게 만드는 불씨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인권이란 단어를 추상적인 언어가 아닌, 인간의 존엄과 삶, 선택의 문제로 구체화합니다. 인권은 단지 보장받는 권리가 아니라, 시민이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능동적 권리’임을 강조하는 영화 <1987>. 우리는 지금 누리는 인권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경계하고 지켜야 하는 가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1987>은 보는 내내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의란 어디에 있는가?’

경찰은 시민을 지켜야 할 존재지만, 영화 속에서는 폭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검사는 권력의 하수인일 수 있지만, 최환 검사는 법과 양심을 따릅니다. 언론은 통제받지만, 일부 기자는 진실을 택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국가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시민'의 위치와 책임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영웅 서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진짜 주인공은 시민’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러한 점에서 <1987>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작품이 아니라, ‘시민의식’과 ‘공공의 역할’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시대적 울림이 있는 영화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권은 위협받고, 언론은 흔들리며, 권력은 그 본성을 감추려 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그저 “그땐 그랬지”가 아닌,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1987>은 영화 이상의 작품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시대정신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간들의 삶과 결정을 통해 가슴 깊이 각인시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권을 행사하고,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하루하루가,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이름도 모를 수많은 시민의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오늘이라도 꼭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외침을 현재의 언어로 바꾸어 다시 세상에 들려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는 계속되어야 하며, 시대정신은 사라지지 않아야 하며, 인권은 늘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