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콘크리트마켓 한국형 디스토피아 (서울, 화폐, 소외)

by seilife 2025. 12. 1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콘크리트마켓’은 2024년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디스토피아 드라마 중 하나다. 고립된 서울, 기괴한 화폐 시스템, 통제된 생존 체제를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메타포로 풀어낸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극을 넘어 사회 철학적 성찰을 이끈다. 이 글에서는 드라마 속 서울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현실 도시의 그림자를 투영하는지, ‘통조림’이라는 상징적 화폐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다루며, 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의 구조와 본질에 대해 심도 깊게 분석한다.

콘크리트 마켓, 서울이라는 배경이 주는 디스토피아적 상징성과 현실의 거울

콘크리트마켓의 배경은 전형적인 ‘미래형 서울’이 아니다. 이는 종종 SF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기술 도시나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회색빛 콘크리트 구조물, 좁고 어두운 복도,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모습 등은 서울이 가진 현실의 부정적인 단면을 증폭시켜 그려낸다.

드라마 속 서울은 마치 '압축된 감옥'처럼 묘사된다. 하늘은 인공조명으로 대체되었고, 바깥 공기는 유독해 창문을 열 수 없다. 주거 공간은 벽 하나를 두고 비좁게 붙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는 계급에 따라 접근이 제한된다. 이 설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능하는 은유’로 작용한다.

실제 서울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밀집한 도시로, 고층 아파트 중심의 생활 공간, 상시 교통체증, 높은 경쟁률, 주거 불균형 등이 삶의 질을 제한하고 있다. 청년들은 치솟는 전셋값과 월세,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살기 위한 최소 단위의 삶’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드라마 속 설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드라마는 서울을 "선택지 없는 도시"로 표현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블록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으며, 정부나 외부의 개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누군가는 자원을 독점하고, 누군가는 끝없이 노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결과적으로 ‘기회’가 아닌 ‘통제’의 상징이 되어간다.

또한,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심리적 폐쇄성’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제 현대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자유롭지만, 심리적으로는 경쟁, 불안, 생존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자발적 고립의 결과로 탄생한 사회를 보여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미 디스토피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만든다.

통조림이라는 화폐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극단적 비틀기

드라마 속에서 화폐는 통조림이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이 통조림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생존의 최소 단위이자 거래 수단, 노동의 대가, 심지어 권력의 상징이 된다.

이 설정은 매우 탁월한 비유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있으며, 열지 않으면 식량으로 기능하지 않고, 열면 화폐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이는 자본의 순환 구조,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의 충돌, 투자와 소비 사이의 긴장 관계를 모두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화폐가 기존 은행이나 제도에 의해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조림은 각자의 노동, 거래, 혹은 폭력적인 수단으로 획득되며, 국가나 사회는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 이는 무규제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 사회의 극단적 형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경제 시스템에서는 윤리와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통조림을 잃는 것을 의미하고, 감정적 연대는 손실로 이어진다. 심지어 가족 간의 관계도 통조림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먹을 것을 주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생존의 분배가 되고, 그 과정에서 윤리적 판단은 사라진다.

또한, 통조림은 계층 구조를 고착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많은 양의 통조림을 가진 상층민은 더 많은 권리를 갖고, 안전지대에서 살 수 있으며, 적은 통조림만 가진 하층민은 생존조차 위태로운 공간으로 내몰린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자산 기반 계급화’의 상징적 재현이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도 부동산, 주식 등 자본 자산의 보유 여부는 계층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현실을 ‘먹는 것조차 경쟁인 사회’로 치환해 보여준다. 그 어떤 도덕적 판단도, 윤리도, 관계도 자본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통조림’이라는 설정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본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전체 체제의 구조, 통제 방식, 인간성의 소외

콘크리트마켓 속 사회는 중앙 통제 방식이 아닌 ‘시장 중심 통제’ 시스템이다. 정부, 국가, 군대, 법률 등의 전통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경제적 이득’에 의해 움직인다. 즉, 체제의 중심은 자본이다.

이러한 체제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시장처럼 보인다. 누구나 거래할 수 있고, 노동을 통해 생존을 확보할 수 있으며,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실상은 철저히 비대칭적이다. 이미 많은 자본을 가진 이들은 더욱 많은 권한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체제를 유지시킨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자발적 복종’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순응한다. 이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작품은 이 체제를 무력으로 바꾸려는 혁명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감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생존을 위해 감정과 윤리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정당한가?”

드라마는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들이 어떻게 시스템에 의해 억눌리고, 제거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시스템에 의해 불필요한 요소로 간주되며, 사랑은 약점으로 취급된다.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행동하게 되며, 사회는 ‘감정 없는 효율’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시장의 부속품’이 된다. 이는 마치 현대 사회에서의 직장인, 노동자, 소비자의 위치를 그대로 반영한 듯한 구조다.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체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제한된 자유.

이 체제는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의 후반부에서는 이 시스템이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조짐이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끝없이 성장만을 요구하는 체제는 언젠가 그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콘크리트마켓’은 단지 하나의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밀한 은유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디스토피아라는 방식으로 드러낸 철학적 작품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발전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전쟁터, 자원의 부족, 관계의 파괴를 상징한다. 통조림이라는 화폐는 인간의 가치를 수치화하고, 체제는 자유를 가장한 통제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단지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은 연대의 시도, 감정을 지키려는 움직임, 체제의 균열은 결국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사회는 진정 디스토피아가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드라마 속에 없다. 그 답은 지금 이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