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무게감 있는 세계관이나 거대한 사명감을 기대했는데, 영화 하이파이브는 첫 장면부터 방향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장기 이식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렇게 가볍고 따뜻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생활감으로 풀어낸 초능력, 왜 이게 통하는가
히어로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서사 구조인 '오리진 스토리(Origin Story)'가 있습니다. 오리진 스토리란 주인공이 어떻게 능력을 갖게 됐는지 설명하는 도입부로, 대부분 거대한 사건이나 비극적 계기를 통해 영웅이 탄생하는 방식입니다. 하이파이브도 이 구조를 따르지만, 그 온도가 전혀 다릅니다.
심장 이식을 받은 완서는 자신에게 생긴 괴력을 처음에 "성장판이 화끈하게 열린 건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진짜 웃음이 나왔습니다. 초능력을 각성한 순간인데도 조금도 비장하지 않고, 완전히 현실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다른 히어로물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능력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이 훨씬 인간적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생활감이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폐 이식을 받아 엄청난 폐활량을 갖게 된 지성이 재채기 한 번으로 주변 사물을 날려버리는 장면, 간 이식 후 남의 상처를 대신 떠안는 치유 능력을 가진 약선이 물 한 잔으로 금방 회복하는 장면 등은 설정 자체가 일상의 맥락 안에 녹아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영화의 몰입을 높이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국내 장르 영화 시장에서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한 혼합 장르 작품의 관객 만족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하이파이브는 바로 이 흐름 위에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능력보다 먼저 살아 있다는 것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각 인물의 능력 배치 방식입니다. 단순히 설정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초능력 각성의 계기'입니다. 이는 능력자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하는 순간을 가리키는데, 하이파이브의 인물들은 이 각성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완서는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우연히 자신의 괴력을 확인하고, 지성은 일상 속에서 재채기를 하다 뒤늦게 깨닫고, 약선은 공장 사고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능력을 씁니다. 이 차이 하나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선녀 캐릭터가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에게 초능력이 없다고 내내 속상해하면서 "예뻐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장면은 웃기지만, 동시에 이 인물의 자기 인식 방식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여섯 명 중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을 가진 인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 캐릭터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능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하이파이브 같은 앙상블 캐릭터 구조, 즉 여러 인물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함께 움직이는 방식은 영화 서사론에서 '멀티 프로타고니스트(Multi-protagonist)' 구조라고 부릅니다. 이 구조는 단일 주인공보다 더 많은 감정선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각본 구성이 까다롭습니다. 하이파이브는 이 부분을 유머와 케미로 커버하는 편인데, 전반적으로는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능력과 성격 간 연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완서 (심장 이식): 폭발적인 운동 능력과 괴력. 행동이 앞서는 성격과 맞닿아 있음
- 지성 (폐 이식): 엄청난 폐활량으로 주변을 날려버리는 능력. 덜렁대는 성격과 묘하게 어울림
- 약선 (간 이식): 남의 상처를 대신 짊어지는 치유 능력.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상과 일치
- 선녀 (신장 이식):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능력. 겉보기와 실제가 다른 캐릭터의 핵심
한국형 히어로의 가능성과 아쉬운 점
제 경험상 히어로 영화를 볼 때 가장 피로감이 드는 순간은 악당의 욕망이 지나치게 단순할 때입니다. 하이파이브의 빌런 영춘은 다른 초능력자들의 장기를 모두 빼앗아 신이 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정 자체는 충분히 위협적이고, 특히 노화를 가속시키는 능력을 흡수하는 장면은 꽤 섬뜩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춘이라는 인물은 오랫동안 일궈온 사업을 헐값에 빼앗기려는 상황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공감 가능한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 감정선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전형적인 탐욕형 빌런으로 수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악역의 서사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전개됐다면 영화 전체의 긴장감이 훨씬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코미디와 감동을 함께 담으려는 시도가 일부 장면에서는 감정선이 깊어지기 전에 다음 분위기로 넘어가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서와 아버지의 관계는 분명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축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걱정해서 태권도를 금지시키면서도, 막상 위험이 닥치면 누구보다 먼저 몸을 던지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뭉클했습니다. 완서가 그런 아버지의 체면을 살려주듯 뒤에서 능력을 대신 써주는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압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선이 조금 더 길게 숨을 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분명합니다. 한국영화에서 '한국형 슈퍼히어로 장르(K-Superhero Genre)'라는 개념이 아직 정착 단계에 있습니다. K-Superhero란 할리우드식의 거대 세계관이나 신화적 영웅 서사 대신, 한국적 정서와 생활 밀착형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히어로 장르를 가리킵니다. 하이파이브는 이 방향을 제대로 탐색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국내 OTT 플랫폼 콘텐츠 제작 현황을 살펴보면, 장르 다변화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 흐름을 뒷받침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하이파이브는 완벽한 히어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처럼 무게감 있는 히어로물보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더 편하게 보는 분들에게는 꽤 잘 맞는 영화입니다. 초능력보다 그 능력을 누구와 나누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이 영화는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냅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한국 영화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