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물로만 봤습니다. 만년 어시스턴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만화가 야마시로 케이고가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그 경험을 만화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다는 설정 자체는 흔한 스릴러 공식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점점 이상한 불편함이 밀려왔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피해자일까요? 아니면 살인 사건을 이용해 성공을 거머쥔 기회주의자일까요? 이 질문이 영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 속 독특한 설정
보통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는 살인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 범인에게 쫓기거나 경찰과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Narrative)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조와 방식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기존 범죄물의 내러티브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야마시로는 일가족 살인 현장을 목격한 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그 장면을 스케치북에 담습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게 정상적인 반응인가?" 싶었는데, 곧바로 그가 그 경험을 만화 소재로 활용하는 걸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영화는 실제 살인 사건과 만화 속 사건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설정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범인은 야마시로의 만화를 읽고 그대로 모방 범죄를 저지르죠. 장소, 흉기, 희생자 선정 방식까지 만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런 연쇄 살인(Serial Killing) 패턴은 범죄심리학에서 모방 범죄의 전형적인 사례로 분류되는데, 여기서 연쇄 살인이란 일정 기간 동안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살인 행위를 말합니다(출처: 대검찰청 범죄분석). 저는 이 설정이 단순히 스릴러의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창작물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범인이 직접 야마시로에게 접근해 다음 이야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장면입니다. 이 순간 저는 "누가 진짜 작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마시로는 자신의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범인의 계획을 대신 그려주는 도구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이런 관계 역전 구조가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지면서 관객은 계속해서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창작 윤리와 성공의 경계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매력적인 지점은 바로 창작 윤리 문제입니다. 저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거든요. 야마시로는 분명 살인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비극을 소재로 활용해 1년 만에 인기 만화가로 성공합니다. 그의 만화 '산주시'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디테일이 살아있고, 독자들은 그 사실성에 열광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저작권(Copyright)과 소재 윤리의 차이입니다. 저작권이란 창작물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의미하는 반면, 소재 윤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창작자의 도덕적 책임을 말합니다. 야마시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이므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실제 희생자와 유족이 존재하는 비극을 오락 콘텐츠로 소비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이 발생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경계선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영화는 이 문제를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입니다. 형사가 야마시로를 찾아와 만화 연재 중단을 요청하지만, 편집부는 인기작을 포기할 수 없다며 거부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현실의 미디어 산업이 떠올랐습니다. 실제 사건 사고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쉽고, 그만큼 상업적 가치가 높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의 소비율이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누군가의 고통이 존재하죠.
야마시로 본인도 이 딜레마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그는 자신의 만화가 또 다른 살인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얻은 성공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제가 보기에 이 지점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창작자는 어디까지 현실을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만화가 야마시로의 선택과 결말
영화 후반부는 야마시로가 피동적인 관찰자에서 능동적인 행동가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더 이상 범인의 계획을 만화로 옮기는 도구가 아니라, 직접 범인을 유인하는 함정을 설계합니다. 자신과 가족을 미끼로 한 최종화를 구상하는 장면은 메타픽션(Metafiction)의 전형적인 예시인데, 메타픽션이란 창작물 속에서 창작 행위 자체를 다루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야마시로는 만화 속에 본인이 등장하고, 실제 현실에서 그 만화가 실현되도록 계획하죠.
솔직히 이 부분은 다소 과장되게 느껴졌습니다. 범인과의 최종 대결 구조가 지나치게 극적으로 흘러가면서 초반의 현실적인 긴장감이 조금 희석된 느낌이었거든요. 범인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또 다른 가족을 공격하는 장면, 경찰의 방탄복 설정 등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클리셰처럼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티보다 스펙터클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야마시로가 보여준 선택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만화가 불러온 참사를 직접 마주하고, 범인을 잡는 데 일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얻었던 성공과 명예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였죠.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현실의 비극을 소재로 성공을 거둔 창작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창작자의 윤리와 욕망을 다룬 심리 드라마로 받아들였습니다. 야마시로라는 인물은 우리 모두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갈망하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잃게 될지 모르는 우리 자신 말이죠.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후반부 전개가 아쉬웠지만, 던지는 질문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