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히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오늘날 2030세대가 처한 감정적·사회적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 입 밖으로 꺼내본 말, 또는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자기합리화했던 그 문장, “어쩔 수가 없었어.” 이 영화는 바로 그 회피와 체념, 그리고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관계의 피로와 감정의 무게를 드러내며 깊은 공감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어쩔 수가 없다 인간관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서사
'어쩔 수가 없다'는 영화는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조명한다. 등장인물들은 거창한 사건을 겪지 않는다. 이혼이나 죽음, 범죄 같은 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건들이 중심이 된다. 바로 그 일상성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작은 오해 하나, 어색한 침묵 한 번, 말하지 못한 진심 하나가 관계를 서서히 갉아먹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주인공 지훈은 30대 초반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무표정하게 서 있고, 점심시간에는 말 없이 밥을 먹는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공허함을 느낀다. 연인과는 대화가 줄었고, 직장 동료와는 표면적인 이야기만 오간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관계 속에서 “맞춰주는 게 편하다”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타인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 지훈의 생존 전략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관계의 균열은 영화 초반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오랜 친구였던 준호와의 대화에서, 지훈은 예전처럼 웃으며 말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엔 사소한 농담도 함께 웃던 관계였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에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거리감'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인간관계의 무게와 피로를 사회 구조와 연결지으며 묘사한다. 직장 내 권위적 문화, 성과 중심주의, 불안정한 고용 환경 등이 개인을 점점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피하게 된다. 하지만 그 회피가 결국 더 큰 고립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한다.
2030세대의 감정 공감대를 자극하다
이 영화가 특히 2030세대의 큰 공감을 얻은 이유는 바로 그 세대가 감정 표현에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SNS로 누구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는 서툴다. ‘어쩔 수가 없다’는 이러한 세대적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지훈은 연인 수진과의 관계에서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줄고, 감정 표현도 줄어든다. 수진은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묻지만, 지훈은 대답 대신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다. 실망, 지침,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름'이 있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말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표정과 눈빛, 사소한 행동으로 표현한다. 과도한 설명이나 연출 없이도 관객은 지훈의 고통과 수진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지훈이 혼자 술을 마시다 흐느끼는 장면이다. 말 한마디 없이, 단지 무너져내리는 그의 얼굴을 통해 관객은 ‘이건 내 이야기야’라는 강한 이입을 경험한다. 특히 2030세대는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이기에,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더 큰 공감으로 다가온다. 또한 영화는 친구 관계에서 발생하는 오묘한 감정도 정교하게 묘사한다. 오랜 친구였지만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 그러나 끊어낼 수도 없는 관계. 그 관계 안에서의 미묘한 긴장감, 배려와 불편함 사이에서의 갈등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친하다고 해서 모든 걸 이해받는 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많은 2030세대에게 울림을 준다. 이처럼 영화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 혹은 말해도 통하지 않는 감정의 영역을 깊이 있게 다룬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이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고, 또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현실 속 무기력함과 그 너머의 희망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은 처음에는 변명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것이 꼭 비겁한 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단순히 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 속에도 각자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음을 조명한다. 지훈은 결국 한 번의 폭발을 겪는다. 쌓였던 감정을 참다 못해 회사 회식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분출하고 만다. 그 이후 그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을 경험하게 되고, 고립감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회피해왔던 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친구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수진에게도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물론 그 진심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는다. 수진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친구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조용한 희망을 제시한다. 지훈이 무심코 마주친 낯선 사람과 나누는 짧은 인사, 그리고 이어지는 미소는 작지만 큰 울림을 준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회복된다는 메시지,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영화는 무기력함을 단지 절망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안에도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다시 관계를 맺게 하며, 그 관계가 곧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뒤에는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여운이 남는다.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2030세대가 직면한 감정의 위기, 인간관계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감정의 피로 속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감정의 여백을 채워줄 시간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가 없다’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