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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이 말하지 않은 진실들 (허구의 무대, 윤리적 파열, 외면한 역사)

by seilife 2026. 2. 11.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히 한 시대의 범죄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경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 침묵과 책임의 윤리를 동시에 해체하며, 관객에게 그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진실을 강제로 들이밉니다. 무대 위에 선 자들이 ‘자신의 죄’를 ‘예술처럼 연기’하는 이 충격적 서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록의 힘’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또 왜곡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줍니다.

액트 오브 킬링 왜곡된 기억이 만든 허구의 무대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2012)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연출하고 에롤 모리스, 베르너 헤어조크 등이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내용은 인도네시아 1965년 쿠데타 이후 발생한 대규모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인권 단체와 역사학자들에 의해 가장 은폐된 집단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사건을 단순히 고발하거나 피해자의 증언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실제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들을 직접 섭외해, 그들이 당시의 학살 장면을 영화처럼 각색하고, 재연하고, 연기하게 만드는 전대미문의 형식을 채택합니다.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당시 암흑조직과 연결된 민병대원이었으며, 약 1,000여 명을 손수 죽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살해 방법을 자랑스럽게 재연하고,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 스타일로 상황을 연출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장면은 안와르가 직접 희생자의 역할을 맡아 고문과 살인을 연기하는 부분입니다. 그가 목을 조르고, 발로 차고, 피범벅이 된 세트를 바라보며 느끼는 기이한 흥분과 동요는,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도덕적 불편함을 안깁니다.

이런 파격적인 방식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전혀 다릅니다. 보통은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거나 인터뷰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극적인 구성, 영화적 연기, 환각적인 미장센을 통해 기억의 왜곡과 자기 합리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 복합적인 구조를 지닙니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미화하며 연기를 할수록, 관객은 그 괴리감 속에서 더욱 진실을 추적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구조입니다.

안와르 콩고는 처음에는 ‘영웅처럼’ 자신을 그리지만, 점차 카메라 앞에서 심리적 변화와 흔들림을 겪게 됩니다. 특히 후반부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구토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진심인지 연기인지, 죄책감인지 자기기만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모호성 자체가 진실의 민낯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미학입니다.

연출과 현실 사이,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파열

‘액트 오브 킬링’이 다큐멘터리로서 갖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은, ‘진실의 전달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윤리’ 사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다큐멘터리는 기록성과 객관성, 사실 중심의 나열, 감정의 최소화라는 원칙에 기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런 기존 규범을 의도적으로 파괴합니다. 극적 연출, 조명과 음악, 배우처럼 행동하는 실제 인물들을 통해, 연출된 진실을 통해 더 깊은 심리적 진실에 접근하려 합니다.

영화의 초반, 안와르가 살인을 시연하면서 웃음을 짓는 장면은 단순한 비도덕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건 과거에 모두가 인정한 일이었다"고 말하며, 학살을 ‘국가 권력에 의해 허용된 질서’로 합리화합니다. 이처럼 다큐 속 가해자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서사는 역사 교과서처럼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이 지점에서 도덕적 공백을 의도합니다. 그는 그들을 설득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학살을 연출하도록 방치합니다. 그렇게 구성된 장면들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처럼 보이며, 관객에게 해석의 몫과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윤리적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감독이 너무 중립적으로 행동한다’, ‘가해자의 시선을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 자체가 이 영화의 의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도덕적 판단을 중단한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더 강한 도덕적 충격을 만든다.’ 이 영화가 증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진짜 사실이고, 무엇이 개인의 기억인지, 그리고 그 기억은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관객은 점점 혼란스러워지며, 그 혼란 속에서 질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한 영화가 아닌, 사회적 실천을 촉구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침묵과 공포의 사회, 우리가 외면한 역사

이 다큐멘터리는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도 그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인도네시아는 2026년 현재까지도 이 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법적 책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해자 중 다수는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고, 공공연히 인터뷰나 방송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학살을 "당연한 국가 수호"라고 말하거나, 고등학생이 "공산당은 잡아 죽이는 게 정당했다"고 외치는 장면은 교육 시스템과 언론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실을 덮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침묵과 공모의 문화는 단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선택입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그는 단지 안와르 콩고의 죄만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 함께 웃고 박수친 시민들, 비판조차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관객은 이 장면들을 보며,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이 사회는 정상인가?" "나는 내 사회의 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더욱 충격적인 건, 이러한 구조가 인도네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역사 속 수많은 국가들에서도, 침묵 속에 묻힌 폭력의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이 보편적 메시지를 관객의 무의식에 각인시키며, 역사를 잊은 자가 또다시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히 시청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관객을 ‘윤리적 참여자’로 만드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우리는 극장에서 단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참여하며 도덕적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가해자가 웃을 때 분노를 느끼고, 죄책감을 말할 때 혼란을 겪고, 침묵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억의 방향은 선택될 수 있고, 그것이 곧 역사와 윤리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지만,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기억은 권력에 의해 포장되어 우리에게 주입되기도 합니다.

이 다큐는 그러한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진실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왜 침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의 정의를 뒤흔든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 윤리, 권력, 인간성의 경계를 탐험하는 예술적 실험입니다. 감독은 가해자들에게 무대를 주되, 그 무대가 거짓의 극장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우리는 그 극장을 보며 불쾌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이야말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의 형태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단순한 충격을 넘는, 진실을 마주하는 감정의 준비를 하고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결코 편안하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하지만 불편함 속에서 성찰을 일으키고, 침묵 대신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