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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인권, 괴리, 법조인)

by seilife 2025. 12. 21.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단순한 감동 실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배경으로 법의 역할과 한 인간의 변화,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실존 사건인 ‘부림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실성은 물론, 법적·윤리적 고민을 자극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법적 쟁점들을 ‘인권 침해’, ‘법과 정의의 괴리’, ‘현실 속 법조인의 책임’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심도 깊게 분석해보겠습니다.

인권 침해와 표현의 자유

영화 ‘변호인’의 시작은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국밥집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그녀의 아들 진우의 사건을 맡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진우는 친구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수사기관에 의해 가혹한 고문을 당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영화적 연출이 아니라, 1981년 실제로 벌어진 부림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반체제 사상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 대학생, 시민들을 대규모로 검거하고 고문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분 하에 탄압했습니다. 부림사건은 특히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인권 침해는 그 자체로 법적 쟁점입니다.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제12조는 고문 금지와 적법절차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경찰과 수사기관이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허위 자백을 강요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국가권력의 묵인하에 ‘공식적인 수사 방식’으로 정당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변호인 송우석은 진우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이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평소에 법을 통해 돈을 벌던 세무 전문 변호사였지만, 친구 아들의 억울한 사건을 목격하면서 법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는 “국가가 국민을 고문해도 되는 나라가 법치국가입니까?”라는 강력한 대사를 통해 단순히 감정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법, 그리고 인권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또한 이 사건은 단지 한 시대의 문제가 아니며,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정보화 사회, 감시 기술의 발전, 사회 분위기에 따른 공권력 강화 등의 흐름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법적 고민입니다.

변호인 : 법과 정의의 괴리

‘변호인’은 법과 정의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송우석 변호사는 진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와 논리적 근거로 재판에 임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법정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판사는 고문 사실을 무시하고, 검찰은 허위 진술을 바탕으로 유죄를 밀어붙이며, 증거보다 체제 유지를 우선시하는 결정이 내려집니다.

이처럼 법이 존재하지만,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 구조가 바로 영화가 비판하는 현실입니다. 즉, 법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해석과 운용은 권력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부림사건과 같이 조작된 증거, 강제 자백, 권력의 입맛에 맞는 재판은 법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와 같은 재판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자백의 증거 능력 제한’ 등의 기본 법리가 철저히 무시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법과 정의는 종종 괴리됩니다. 법적 절차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공정하거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고위 공직자의 범죄가 증거 부족이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되거나, 경제적 약자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송우석은 단순히 법 조항을 해석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법률가로 성장합니다. 그는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고, 결국 사회적 낙인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진실을 말합니다. 그의 이런 선택은 현실에서는 드물지만,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려야 할 법조인의 모습입니다.

‘변호인’은 이러한 괴리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법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결국 법이란 사회의 정의와 윤리를 실현하는 수단이어야 하며, 형식적 절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메시지가 영화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현실 속 법조인의 역할과 책임

‘변호인’의 마지막 법적 쟁점은 바로 현실 속 법조인이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입니다. 영화 속 송우석은 실존 인물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했습니다. 노무현은 실제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으며, 이 사건을 통해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철학을 정치로 확장시키기 전에, 이미 법정에서부터 약자 편에 서는 법조인이었습니다.

법조인은 단순히 법을 아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책임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조인의 다수는 기득권과 권력에 협조적인 위치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대형 로펌의 수익 중심 구조, 고위 공직자 출신의 법조계 영향력, 공공 변론의 소외 등은 법조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변호인’은 그런 현실 속에서도 소수의 법조인들이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조명합니다. 송우석은 변호사로서의 성공 대신, 사회 정의를 선택합니다. 그의 선택은 현실에서는 외로운 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진실을 말한 내부 고발자,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들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은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법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법조인은 그것을 구현하는 실천자여야 합니다. 이 영화는 단지 송우석 한 사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수많은 현실 속 법조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한 변호를 하고 있는가?
  •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과연 중립인가, 아니면 방관인가?

‘변호인’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 법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는 송우석이 필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법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현실의 법조인이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정의와 윤리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다면, 법은 단지 형식이 아닌 진정한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변호인’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법적·윤리적 고민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인권이 침해되고, 법과 정의가 괴리되며, 현실 속 법조인의 역할이 흔들리는 지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법의 본질을 다시 묻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질문해봐야 합니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그 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