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레버넌트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어요. 보통 영화 보고 나면 “재밌다”거나 “별로다” 이런 식으로 바로 정리가 되는데, 이건 좀 달랐어요. 딱히 통쾌하지도 않은데 계속 머릿속에 남고, 장면 몇 개가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이상했던 건, 영화를 본 느낌이 아니라 내가 같이 버틴 느낌이 들었다는 거예요. 춥고, 아프고, 숨 막히고, 솔직히 편하게 본 영화는 아니었어요. 근데 그래서 더 오래 남는 것 같았습니다.
생존이 아닌 집념을 말하는 영화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숲 속에서 사냥하던 사람들, 갑자기 공격당하고, 총을 들고 있어도 화살에 쓰러집니다. 여기서 이미 느껴져요. 아 이거 인간이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구나.
주인공 글래스는 육지로 이동하자고 합니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도,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게 판단한 거죠. 근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선택 하나가 모든 걸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그 곰 장면. 이건 진짜... 유명해서 알고 봤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더 버겁더라고요. 그냥 액션이 아니라 “아프다”라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요.
물어뜯기고, 끌려다니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황.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힘 들어갔어요. 영화 보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사람이 짐이 되는 순간. 그때부터 인간이 제일 무서워지더라고요.
존은 글래스를 버립니다. 그냥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아들까지 눈앞에서 죽이고, 산 채로 묻어버립니다.
여기서 느낀 건 하나였어요. 자연보다 사람이 더 잔인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는 완전히 바뀝니다. 이건 생존 영화가 아니라 집념 영화가 됩니다.
기어서 이동하고, 상처를 불로 지지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 물에 떠내려가고, 다시 일어나고.
솔직히 보면서 몇 번은 생각했어요. “이게 가능해?” 근데 또 계속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면. 죽은 말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이건 진짜 충격이라기보다, 그냥…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보기 힘든데, 이상하게 눈을 못 떼겠더라고요.
결국 글래스는 살아서 돌아옵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 자체가 이미 영화 한 편인데, 그 뒤에도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쫓아가고, 결국 마주하고, 그런데 직접 끝내지 않습니다.
그 선택이 저는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냥 복수로 끝났으면 이 영화 기억 안 났을 것 같아요.
영화로 인한 부끄러운 감정
저는 솔직히 말하면, 힘든 상황에서 오래 버티는 타입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버티다가, “아 이건 아닌데” 싶으면 빨리 내려놓는 편이에요.
근데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비교가 됐어요.
저 사람은 저 상태에서도 가는데, 나는 왜 이 정도에서도 멈추려고 하지?
물론 상황 자체가 다르죠. 저는 눈밭에서 기어 다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근데 이상하게 그 감정은 연결되더라고요.
글라스는 희망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한 가지예요.
“죽지 말자.”
그거 하나로 움직입니다.
저는 그게 제일 크게 와닿았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의지라는 건 되게 멋있고 단단한 이미지잖아요.
근데 이 영화에서의 의지는 진짜 별거 없습니다. 더럽고, 처절하고, 보기 싫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데 그래도 계속 가는 거.
저는 그게 더 현실 같았습니다.
특히 죽은 말 안 장면은 그냥 충격이 아니라, “아… 나였으면 여기서 포기했겠다” 이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또 하나 느낀 건, 자연 앞에서 인간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풍경은 아름다운데, 그 안에 들어가면 바로 죽을 수도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그냥 대단한 게 아니라 거의 기적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더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서로를 죽입니다.
그게 제일 씁쓸했습니다.
명작이지만 호불호가 강함
이 영화, 잘 만든 건 맞습니다. 연기, 연출, 분위기 다 뛰어나요.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는 말 안 해도 될 정도입니다. 대사 없이도 다 전달됩니다.
근데 솔직히 단점도 있습니다.
느립니다. 진짜 느립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길어요. 몰입하면 좋은데, 집중 깨지면 바로 지루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현실성. 이건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 같아요.
저는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이건 좀 과한데?”
근데 또 한편으로는, 이 영화는 현실 재현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집념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됩니다.
마지막 결말도 좋았습니다. 복수로 끝내지 않는 선택.
저는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어요.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똑같이 피로 끝내는 게 오히려 더 허무하게 느껴졌을 것 같거든요.
이 영화는 시원하게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대신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그냥 “재밌다”라고 추천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한 번은 꼭 봐야 하는 영화.”
편하게 보려고 하면 힘들고, 제대로 보면 오래 남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