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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복수극, 사이코패스, 카타르시스)

by seilife 2026. 4. 14.

 

더파이브

복수 영화를 보다 보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영화 더 파이브를 보면서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남은 건 분노보다 묵직한 슬픔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복수의 시작

영화는 처음부터 꽤 빠르게 일상을 부숩니다. 은하의 남편 성일과 딸 가영이 연쇄 살인범 오재욱에게 차례로 희생되고, 은하 본인도 살아남지만 신체적으로 큰 부상을 입습니다. 보통 복수극이라면 여기서 주인공이 강해지는 몽타주 장면이 나오는 게 공식인데, 이 영화는 그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은하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가 꽤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방법이 바로 장기 이식을 조건으로 한 팀 구성이었습니다. 여기서 장기 이식이란 타인의 손상된 장기를 건강한 공여자의 장기로 대체하는 외과적 시술을 의미하는데, 은하는 자기 몸을 그 공여의 대가로 내걸고 복수를 설계합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자극적 장치가 아니라, 그녀가 이미 자신의 삶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 수는 4만 명을 웃돌 정도로 이식이 절실한 환자가 많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장기이식관리센터). 영화는 이 현실을 배경으로, RH- O형이라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은하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촘촘하게 엮어냅니다. RH- O형이란 적혈구 표면에 Rh 항원이 없는 O형 혈액으로, 수혈 및 이식 적합자를 찾기가 극히 어려운 혈액형입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은하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지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은하 팀의 구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열쇠 수리공 남철: 침입과 현장 접근 담당
  • 사설탐정 정하: 범인의 신원 파악 및 동선 추적
  • 격투 유단자 마형: 범인 제압 담당
  • 의사: 장기 이식 수술 전 과정 책임

사이코패스 범인이 더 무서운 이유

오재욱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폭력적인 살인마가 아닙니다. 그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피해자들을 살해한 뒤 그 흔적을 구체관절인형으로 만들어 자신만의 공간에 전시한다는 점입니다. 구체관절인형이란 구체 형태의 관절 부위로 연결된 인형으로, 원래는 예술 창작물이나 수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재욱은 이 형식을 피해자들의 흔적과 결합시켜 범죄를 하나의 '작품'처럼 다루는데, 이 지점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냉혹한 연쇄 살인마이겠거니 했는데, 은하가 오재욱의 집에 잠입해서 가영의 목걸이와 핸드폰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공포보다 비통함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딸의 흔적이 범인의 공간에 전시물처럼 놓여 있다는 설정은, 복수의 정당성을 관객에게 억지로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전달해 줍니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공감 능력의 결여, 충동 조절 장애, 반사회적 행동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성격 장애를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며, 그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외관을 유지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출처: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오재욱은 평범한 예술가의 얼굴로 살아가면서 채팅 앱으로 피해자를 유인하는 방식을 반복합니다. 이 부분이 실제 범죄 뉴스와 겹쳐 보여서 더 불쾌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수극이 남긴 것은 통쾌함이 아니었습니다 카타르시스

제 경험상 복수극 영화는 대부분 마지막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린 감정이 극적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더 파이브는 그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은하가 복수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결코 상쾌하지 않고, 팀원들이 하나씩 대가를 치르면서 전체 이야기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특히 열쇠 수리공 남철이 마지막에 오재욱에게 당하는 장면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남철이라는 인물은 어리숙해 보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감정 선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가영의 꽃목걸이를 가져다주려는 마음으로 다시 범인의 집에 찾아갔다가 희생된다는 전개는, 조력자 캐릭터가 단순히 기능적인 도구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감정의 무게에 비해, 정하나 마형 같은 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왜 이 위험한 복수에 뛰어드는지에 대한 설득이 조금 더 있었다면, 후반부의 비극성이 훨씬 크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제 경험상 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파이브는 통쾌한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 남은 이유를 겨우 붙잡고 버티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한동안 남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됐습니다. 비슷한 장르에서 색다른 결을 원하신다면 한 번쯤 꺼내 보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56RaaBda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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