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평범한 택배기사의 일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 마르코가 아파트를 오가며 택배를 배달하는 장면은 사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 초반에는 "그냥 평범한 미스터리인가?"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불안감
솔직히 이 영화는 초반부터 뭔가 찝찝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마르코는 코로나 이후 식당에서 잘리고 택배 일을 시작한 평범한 청년인데, 실제로 주변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직업이 바뀐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하나씩 풀어갑니다.
여기서 '폐쇄적 공간 미스터리(Closed Circle Mystery)'란 특정 장소 안에서만 사건이 일어나고, 그 안의 인물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설정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도 작은 아파트 안에서 주민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구조입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영화가 진행될수록 200호, 203호, 205호 같은 호수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누가 범인인지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특히 302호 남자가 피투성이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아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예상과 다르게 계속 방향을 틀면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미스터리 영화는 대부분 중반쯤 범인이 누군지 예측 가능한데, 이 영화는 끝까지 누가 진짜 위험한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분리수거도 안 하는 200호, 항상 집에 없는 203호, 소설가인 205호 모두 각자의 비밀이 있어 보였습니다.
소설 속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마르코가 읽던 소설 작가가 실제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평소에 인터넷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작가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 본 적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느낌이었습니다. 마르코가 처음으로 응원 댓글을 남겼다는 장면도 묘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서 '메타픽션(Metafiction)'이라는 기법이 사용되는데, 이는 작품 안에서 또 다른 창작물이 등장하고 그것이 실제 이야기와 연결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 속 소설이 영화의 실제 사건과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마르코는 선배 아라카와가 쓴 소설은 재미없어서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읽게 된 소설에는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가가 바로 205호에 사는 치하루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묘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우연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이 우연을 사건의 핵심 고리로 활용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웹소설 독자의 약 68%가 작가의 실제 모습이나 생활을 궁금해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출처: 일본출판문화산업진흥재단). 이 영화는 그런 독자의 심리를 잘 활용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르가 바뀌는 순간의 혼란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이야기가 요원, 도청기, 잠입 작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아파트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첩보 영화 같은 느낌으로 변하거든요. 이 부분에서 의견이 갈릴 것 같습니다.
일부 관객들은 "장르가 중간에 바뀌면서 몰입이 깨진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르 전환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아 이게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205호 치하루와 302호 남자 모두 비밀 요원이었다는 반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사용된 도청 장치나 잠입 작전 같은 요소는 '첩보 스릴러(Espionage Thriller)' 장르의 전형적인 장치입니다. 여기서 첩보 스릴러란 스파이나 요원이 등장하여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장르적 요소를 평범한 아파트 미스터리와 결합시켜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중반 이후부터 갑자기 커지면서 장르가 살짝 흔들린 느낌이 있었습니다. 만약 끝까지 아파트 미스터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더 긴장감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꽤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르코의 마음,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그 의미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르코가 남긴 응원 댓글 파일이 치하루에게 소중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비로소 마르코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평범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쉽게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라는 공간도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주거 공간이지만, 문 하나만 닫히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액션이나 큰 스케일보다 평범한 사람의 삶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부분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